Work In Progress of «25/ sinal minus noise» by GRAYCODE, jiiiiin (2023.6.30-7.8)
25, signal minus noise
2023
sound installation - performance
25.Composition
25.Installation
25.Sculpture
25.Performance (feat.ChatGPT)
Exhibition June 30 - July 08, 2023
2023
sound installation - performance
25.Composition
25.Installation
25.Sculpture
25.Performance (feat.ChatGPT)
Exhibition June 30 - July 08, 2023
Performance June 30, 19pm - 24pm, 2023
Collaboration artists Taehyun Lee and DHL
Co-curation MOTHER
Venue MOTHER, Seoul, South Korea
Support Seoul Foundation for Art and Culture
애초에 침묵은 불가능하다.
"북적이는 식당에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당신은 테이블 맞은 편에 앉아 함께 식사를 하는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그 소리가 신호입니다. 그리고 식당 안 나머지 모든 소리는 소음이죠. 그런데 다른 테이블의 누군가가 흥미를 끄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목소리가 신호가 되고 당신의 테이블에서 들리는 이야기는 이제 소음이 됩니다."
소리가 전시 공간을 채운다. 발자국 소리, 스피커 소리, 냉난방 시설의 소음, 창문 밖 길거리와 카페에서 퍼지는 목소리, 자동차 소음과 새소리...전시를 위해 의도된 소리와 일상 소음의 총합으로 전시 공간은 흔히 생각하듯 고요하지 않다. 소리는 냄새처럼 퍼지고 새어나가 공간의 요소들과 충돌하고, 반사된다. 전시공간에는 언제나 다양한 소리가 가득하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시각예술에서는 사운드가 충분히 인식 되거나 논의되지 못했다. 전시공간은 시각의 방해 요소를 제거하며 고도의 시각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진화되어왔기 때문이다. 언제나 일정한 조도로 작품 감상 컨디션을 동일하게 유지하기 위해 자연광을 차단하거나, 작품이 돋보일 수 있도록 흰 벽을 유지하고, 작품 근처의 시설물, 배관, 전기 스위치, 소화기 따위를 치우거나 가리는 오랜 전시의 관습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레이코드, 지인
그레이코드지인은 여전히 시각성을 중심으로 존재하는 전시 공간의 조건을 생산적인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레이코드와 지인 두 사람 모두 작곡을 전공했다는 사실은 이번 신작에 앞서 가졌을 질문을 떠올리는데 단서가 된다. 이들은 개별 전자음악가이자 함께 활동하는 아티스트그룹으로, 컴퓨터로 작곡하고 공기의 진동과 음압을 재료로 소리와 공간 감각을 환기하는 작업을 만든다. "만든다"는 동사로 이들의 작업을 서술하기에는 소리의 비물질성때문에 꼭 맞는 표현이 아닌 듯 하다가도 수공적이고 노동집약적인 작업 과정에 따르면 매우 자연스럽다. 비물질적인 것조차 실제로는 물질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레이코드지인에게는 스피커와 하드웨어 시스템이 단순 테크니컬 하드웨어가 아니라 '악기'이다. 이 정교한 악기와 소리는 물리적 공간의 요소들과 공명하며 우연성, 장소성, 현장성을 갖는다. 이들의 작업에서 주요한 음악적 요소는 낮은 주파수를 물리적으로 충돌시켜 만들어내는 파장과 출렁임으로, 청각 뿐 아니라 시각,몸의 경험에 관여한다. 그레이코드, 지인은 듣는 것 뿐 아니라 듣는 방식을 주의깊게 살펴보도록 자극한다.
#25
신작이자 전시 제목이기도 한 25>는 "전기신호처리 과정에서 신호와 노이즈가 구별되는 기준의 단위 25dB°에서 비롯한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이번 전시는 모호하지만 분명 존재하는 경계에 대한 은유다. 사물이나 현상이 어떠한 기준으로 분간되는 경계,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임계를 모델링한 이번 전시에서 그레이코드지인은 작곡가, 프로듀서이자 엔지니어로 기능하며 그들이 강조하고자 하는 소리에 관객의 주의를 향하게 한다. 이를 위해, 이번 전시는 사운드, 디자인, 그리고 설치, 세 개의 지점에서 동시에 출발하는 전략을 택했다. 비가시적인 소리의 특성을 사운드 디자인의 시각성과 설치 미술의 물질성으로 한데 구현하는 것이다. 전시를 위해 현장에서 세워진 석고 벽은 스피커의 물리적 존재를 지우면서도 오히려 소리의 존재를 명확히 드러낸다. 얇고, 균일하지 않은 두께만큼이나 취약한 석고벽은 전시공간에서 재생되는 사운드의 음압과 충돌하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부스러진다. 이러한 물질의 변화는 인간의 가청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 주파수에도 소음은 언제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대부분 전시 공간의 흰 벽이 시각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이번 전시에서 흰 석고벽은 역설적으로 전시의 청각적 요소를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기능한다. <25)>는 전시 공간이 전통적으로 시각이 우위에 있는 것으로 여겨져왔지만 실은 온갖 소리로 가득한 곳이라는 사실을 환기하며 몸으로 감각하기를 요청한다. 공간이 텅 비어있을 때, 한 명의 관객이 있을 때, 여러 명의 관객이 있을 때 공간의 음압은 수시로 변모하고, 각 사람은 공간의 모서리, 창문 앞, 벽 앞에서 모두가 서로 다른 경험을 갖는다. 이로써 그레이코드지인이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관객에게 즐거움이나 위안의 감정을 전달하기 보다는, 소리와 관계하는 주체로서 감각하는 경험을 제시한다. 사운드를 단순히 청각으로 지각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 속에 시간적, 공간적, 사회적 의미들이 어떻게 암호화되어있는지 질문에 이르게 한다.
#구분과 융합
백남준은 1974년 “비디오합성기 플러스"라는 글에서 예술이 서로 다른 세 가지 부분, 창조자 (적극적인 발신인 active transmitter), 시청자 (수동적인 수신자 passive receiver), 비평가들 (심판 혹은 운반체 judge or carrier-band) 로 나뉜다고 말하며 이러한 구분을 융합하는 예술적 표현방법에 대해 고심한다.? 50년 전 백남준이 언급한 예술의 구분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개 전시는 아티스트의 작업이 완결된 이후에 시작되며, 전시 공간에 작품과 함께 놓이는 텍스트는 기획자의 전시 서문 또는 비평가의 원고일 확률이 높다. 그것은 완성된 작품을 두고, 무엇을 보고 있으며 무엇을 보려 하는지에 대한 글이다. 그런데, 이 전시는 오프닝부터 작업이 시작된다. 공간에 의도한 석고 벽 설치와 사운드의 음압, 관객의 존재가 한데 어우러진 관계 속에서 비로소 충돌하고, 반사되고,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그레이코드지인은 협업자들을 초청하며, 나에게는 글이라는 미디어로 이에 참여할 것을 제안했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작업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은 전시를 위한 글에 대한 기대에 매우 어긋나는 것이었다. 동시에 나는 50년 전 백남준의 말을 떠올리며 이 전시의 비평가가 아닌 트랜스미터이자 리시버이고 동시에 운반체가 되고자 시도한다. 한편, 설치 미술작가 이태현과 그래픽디자이너 DHL로 알려진 이덕형의 참여는 그레이코드지인의 '개인전'에서 예상 가능한 결과를 뛰어넘는다. 그레이코드지인의 사운드와 이태현의 석고 벽설치, 사운드가 벽의 지형을 읽어나가는 파형을 시각화한 이덕형의 디자인, 그리고 이 글은 각 지점에서부터 출발해 서로를 반영하며 하나의 지점에서 만나기로 한다. 여러 주체들의 약속은 기존 예술계의 구분을 융합하는 여정으로, 그레이코드지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실험의 기회를 '미술계'의 관습과 기대를 빗겨가는 방식으로 구상하고 실행한다.
#한남동 MOTHER
이 전시는 그레이코드지인이 2023년 서울문화재단 지원 작가로 선정된 기금으로 동력을 얻었다. 오늘날 많은 전시들이 정부 기금을 지원받아 생산되고 있지만, 전시 형식으로 전시공간에서 발화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그리 간단히 주어지는 일은 아니다. 어디에서 어떻게 무엇을 누구에게 보여줄 것인가 따위의 질문들을 스스로 생성하고 답해나가야 한다. 이들은 신작을 선보일 장소로 'MOTHER' 라는 다소 생소한 곳을 선택하고, 공간 사용료를 지불했다. MOTHER는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744-5에 위치한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로, 20평 남짓한 전시 공간 외에도 오피스와 오프라인 카페를 한데 품고 전방위적으로 시각 문화를 확산해왔다. 르세라핌, 아이유와 같은 아이돌과 뮤지션의 뮤직비디오, 구찌, 루이비통 따위의 브랜드 영상을 기획 제작하는 상업 시각 문화 생산을 기반으로, 최근에는 미술 제도에 뿌리를 두고 생산된 영상 작업들을 스크리닝하기도 했다.
한편, 한남동은 2021년에 신규 갤러리가 가장 많이 생겨난 지역으로 기록되는데, 국내 최대 사립미술관은 물론 다수의 해외 갤러리, 해외 명품 플래그스토어와 공연장, 카페와 유흥시설이 밀집한 이 곳에서 그레이코드지인은 순수예술과 상업, 예술인 것과 예술이 아닌 것 사이에 강한 연결성을 보았다. 이들은 정형화된 전시 공간보다는 모호한 듯 분명 존재하는 경계에서 유동적으로 그 기능을 달리해온 MOTHER에서 이번 신작을 선보이기로 한다. 그레이코드지인이 처음 떠올린 지향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지점에서 함께 섞이고 반영하며 적극적인 발신인, 트랜스미터가 되는 것이었다. 이제 그레이코드지인은 MOTHER를 온갖 소리로 가득한 전시 공간이자, 진동의 컨테이너로, 다양한 이들을 연결하는 하나의 예술 현장으로 소개한다.
(그레이코드지인의) 전시장에서 맞닥뜨린 걸 '음악'이라고 부르지는 못하겠다."는 이전 전시에 대한 어떤 평가에 이어, 이들의 존재를 무엇으로든 명명지어야 한다면 '25dB' 라는 임계처럼 이들 스스로가 25dB 그 자체 아닐까. 신호와 노이즈, 음악과 미술, 상업예술과 순수예술,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 사이에서 구분과 융합에 대해 질문하며 소리의 본질을 환기하는 이 전시는 시그널이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각자 선택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되짚어준다. 계단을 걸어 올라와 전시공간에서 사운드와 맞닥뜨린 이들은 모두 발신인이자 수신인이고, 전달체가 되면서 전시는 비로소 시작된다. 그레이코드지인이 고안한 장치된 오프라인 공간에서 각자에게 의미있는 신호가 무엇인지 발견하는 경험은 시그널과 노이즈의 본질에 닿는다. 우리는 풍부한 소음 안에 있다. 소음에서 신호로, 신호에서 소음으로, 각자의 선택으로 경계는 수없이 생성되고 사라질 뿐이다. 내 귀는 무엇을 어떻게 듣고 있을까. 아니, 무엇을 듣기로 했는가.
- 김윤서 (백남준 아트센터 학예연구사)
"북적이는 식당에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당신은 테이블 맞은 편에 앉아 함께 식사를 하는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그 소리가 신호입니다. 그리고 식당 안 나머지 모든 소리는 소음이죠. 그런데 다른 테이블의 누군가가 흥미를 끄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목소리가 신호가 되고 당신의 테이블에서 들리는 이야기는 이제 소음이 됩니다."
소리가 전시 공간을 채운다. 발자국 소리, 스피커 소리, 냉난방 시설의 소음, 창문 밖 길거리와 카페에서 퍼지는 목소리, 자동차 소음과 새소리...전시를 위해 의도된 소리와 일상 소음의 총합으로 전시 공간은 흔히 생각하듯 고요하지 않다. 소리는 냄새처럼 퍼지고 새어나가 공간의 요소들과 충돌하고, 반사된다. 전시공간에는 언제나 다양한 소리가 가득하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시각예술에서는 사운드가 충분히 인식 되거나 논의되지 못했다. 전시공간은 시각의 방해 요소를 제거하며 고도의 시각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진화되어왔기 때문이다. 언제나 일정한 조도로 작품 감상 컨디션을 동일하게 유지하기 위해 자연광을 차단하거나, 작품이 돋보일 수 있도록 흰 벽을 유지하고, 작품 근처의 시설물, 배관, 전기 스위치, 소화기 따위를 치우거나 가리는 오랜 전시의 관습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레이코드, 지인
그레이코드지인은 여전히 시각성을 중심으로 존재하는 전시 공간의 조건을 생산적인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레이코드와 지인 두 사람 모두 작곡을 전공했다는 사실은 이번 신작에 앞서 가졌을 질문을 떠올리는데 단서가 된다. 이들은 개별 전자음악가이자 함께 활동하는 아티스트그룹으로, 컴퓨터로 작곡하고 공기의 진동과 음압을 재료로 소리와 공간 감각을 환기하는 작업을 만든다. "만든다"는 동사로 이들의 작업을 서술하기에는 소리의 비물질성때문에 꼭 맞는 표현이 아닌 듯 하다가도 수공적이고 노동집약적인 작업 과정에 따르면 매우 자연스럽다. 비물질적인 것조차 실제로는 물질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레이코드지인에게는 스피커와 하드웨어 시스템이 단순 테크니컬 하드웨어가 아니라 '악기'이다. 이 정교한 악기와 소리는 물리적 공간의 요소들과 공명하며 우연성, 장소성, 현장성을 갖는다. 이들의 작업에서 주요한 음악적 요소는 낮은 주파수를 물리적으로 충돌시켜 만들어내는 파장과 출렁임으로, 청각 뿐 아니라 시각,몸의 경험에 관여한다. 그레이코드, 지인은 듣는 것 뿐 아니라 듣는 방식을 주의깊게 살펴보도록 자극한다.
#25
신작이자 전시 제목이기도 한 25>는 "전기신호처리 과정에서 신호와 노이즈가 구별되는 기준의 단위 25dB°에서 비롯한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이번 전시는 모호하지만 분명 존재하는 경계에 대한 은유다. 사물이나 현상이 어떠한 기준으로 분간되는 경계,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임계를 모델링한 이번 전시에서 그레이코드지인은 작곡가, 프로듀서이자 엔지니어로 기능하며 그들이 강조하고자 하는 소리에 관객의 주의를 향하게 한다. 이를 위해, 이번 전시는 사운드, 디자인, 그리고 설치, 세 개의 지점에서 동시에 출발하는 전략을 택했다. 비가시적인 소리의 특성을 사운드 디자인의 시각성과 설치 미술의 물질성으로 한데 구현하는 것이다. 전시를 위해 현장에서 세워진 석고 벽은 스피커의 물리적 존재를 지우면서도 오히려 소리의 존재를 명확히 드러낸다. 얇고, 균일하지 않은 두께만큼이나 취약한 석고벽은 전시공간에서 재생되는 사운드의 음압과 충돌하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부스러진다. 이러한 물질의 변화는 인간의 가청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 주파수에도 소음은 언제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대부분 전시 공간의 흰 벽이 시각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이번 전시에서 흰 석고벽은 역설적으로 전시의 청각적 요소를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기능한다. <25)>는 전시 공간이 전통적으로 시각이 우위에 있는 것으로 여겨져왔지만 실은 온갖 소리로 가득한 곳이라는 사실을 환기하며 몸으로 감각하기를 요청한다. 공간이 텅 비어있을 때, 한 명의 관객이 있을 때, 여러 명의 관객이 있을 때 공간의 음압은 수시로 변모하고, 각 사람은 공간의 모서리, 창문 앞, 벽 앞에서 모두가 서로 다른 경험을 갖는다. 이로써 그레이코드지인이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관객에게 즐거움이나 위안의 감정을 전달하기 보다는, 소리와 관계하는 주체로서 감각하는 경험을 제시한다. 사운드를 단순히 청각으로 지각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 속에 시간적, 공간적, 사회적 의미들이 어떻게 암호화되어있는지 질문에 이르게 한다.
#구분과 융합
백남준은 1974년 “비디오합성기 플러스"라는 글에서 예술이 서로 다른 세 가지 부분, 창조자 (적극적인 발신인 active transmitter), 시청자 (수동적인 수신자 passive receiver), 비평가들 (심판 혹은 운반체 judge or carrier-band) 로 나뉜다고 말하며 이러한 구분을 융합하는 예술적 표현방법에 대해 고심한다.? 50년 전 백남준이 언급한 예술의 구분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개 전시는 아티스트의 작업이 완결된 이후에 시작되며, 전시 공간에 작품과 함께 놓이는 텍스트는 기획자의 전시 서문 또는 비평가의 원고일 확률이 높다. 그것은 완성된 작품을 두고, 무엇을 보고 있으며 무엇을 보려 하는지에 대한 글이다. 그런데, 이 전시는 오프닝부터 작업이 시작된다. 공간에 의도한 석고 벽 설치와 사운드의 음압, 관객의 존재가 한데 어우러진 관계 속에서 비로소 충돌하고, 반사되고,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그레이코드지인은 협업자들을 초청하며, 나에게는 글이라는 미디어로 이에 참여할 것을 제안했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작업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은 전시를 위한 글에 대한 기대에 매우 어긋나는 것이었다. 동시에 나는 50년 전 백남준의 말을 떠올리며 이 전시의 비평가가 아닌 트랜스미터이자 리시버이고 동시에 운반체가 되고자 시도한다. 한편, 설치 미술작가 이태현과 그래픽디자이너 DHL로 알려진 이덕형의 참여는 그레이코드지인의 '개인전'에서 예상 가능한 결과를 뛰어넘는다. 그레이코드지인의 사운드와 이태현의 석고 벽설치, 사운드가 벽의 지형을 읽어나가는 파형을 시각화한 이덕형의 디자인, 그리고 이 글은 각 지점에서부터 출발해 서로를 반영하며 하나의 지점에서 만나기로 한다. 여러 주체들의 약속은 기존 예술계의 구분을 융합하는 여정으로, 그레이코드지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실험의 기회를 '미술계'의 관습과 기대를 빗겨가는 방식으로 구상하고 실행한다.
#한남동 MOTHER
이 전시는 그레이코드지인이 2023년 서울문화재단 지원 작가로 선정된 기금으로 동력을 얻었다. 오늘날 많은 전시들이 정부 기금을 지원받아 생산되고 있지만, 전시 형식으로 전시공간에서 발화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그리 간단히 주어지는 일은 아니다. 어디에서 어떻게 무엇을 누구에게 보여줄 것인가 따위의 질문들을 스스로 생성하고 답해나가야 한다. 이들은 신작을 선보일 장소로 'MOTHER' 라는 다소 생소한 곳을 선택하고, 공간 사용료를 지불했다. MOTHER는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744-5에 위치한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로, 20평 남짓한 전시 공간 외에도 오피스와 오프라인 카페를 한데 품고 전방위적으로 시각 문화를 확산해왔다. 르세라핌, 아이유와 같은 아이돌과 뮤지션의 뮤직비디오, 구찌, 루이비통 따위의 브랜드 영상을 기획 제작하는 상업 시각 문화 생산을 기반으로, 최근에는 미술 제도에 뿌리를 두고 생산된 영상 작업들을 스크리닝하기도 했다.
한편, 한남동은 2021년에 신규 갤러리가 가장 많이 생겨난 지역으로 기록되는데, 국내 최대 사립미술관은 물론 다수의 해외 갤러리, 해외 명품 플래그스토어와 공연장, 카페와 유흥시설이 밀집한 이 곳에서 그레이코드지인은 순수예술과 상업, 예술인 것과 예술이 아닌 것 사이에 강한 연결성을 보았다. 이들은 정형화된 전시 공간보다는 모호한 듯 분명 존재하는 경계에서 유동적으로 그 기능을 달리해온 MOTHER에서 이번 신작을 선보이기로 한다. 그레이코드지인이 처음 떠올린 지향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지점에서 함께 섞이고 반영하며 적극적인 발신인, 트랜스미터가 되는 것이었다. 이제 그레이코드지인은 MOTHER를 온갖 소리로 가득한 전시 공간이자, 진동의 컨테이너로, 다양한 이들을 연결하는 하나의 예술 현장으로 소개한다.
(그레이코드지인의) 전시장에서 맞닥뜨린 걸 '음악'이라고 부르지는 못하겠다."는 이전 전시에 대한 어떤 평가에 이어, 이들의 존재를 무엇으로든 명명지어야 한다면 '25dB' 라는 임계처럼 이들 스스로가 25dB 그 자체 아닐까. 신호와 노이즈, 음악과 미술, 상업예술과 순수예술,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 사이에서 구분과 융합에 대해 질문하며 소리의 본질을 환기하는 이 전시는 시그널이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각자 선택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되짚어준다. 계단을 걸어 올라와 전시공간에서 사운드와 맞닥뜨린 이들은 모두 발신인이자 수신인이고, 전달체가 되면서 전시는 비로소 시작된다. 그레이코드지인이 고안한 장치된 오프라인 공간에서 각자에게 의미있는 신호가 무엇인지 발견하는 경험은 시그널과 노이즈의 본질에 닿는다. 우리는 풍부한 소음 안에 있다. 소음에서 신호로, 신호에서 소음으로, 각자의 선택으로 경계는 수없이 생성되고 사라질 뿐이다. 내 귀는 무엇을 어떻게 듣고 있을까. 아니, 무엇을 듣기로 했는가.
- 김윤서 (백남준 아트센터 학예연구사)
1 데이먼 크루코프스키 정은주 옮김. 마티. 117